[관광휴양지]오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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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지구내 위치한 미지정문화재로서, 웅동마을(웅천동 624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헌종 13년(1847) 정재선이 이순신 장군을 따라 종군하다가 전사항 정철에세 나라에서 충절공이란 시호를 내린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이후 충의공 정춘, 충숙공 정린, 충정공 정대수의 4위를 함께 모셔 사충사라 하였으나, 1864년 대원군의 서원 첦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오충사라 이름한 것은 1921년 웅천동에 사우를 가시 세울 때 충무공을 주벽으로 모시고 기존의 4충신을 배향한것에서 유래하였다.
현재 오충사 건물은 1938년 일본 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된 것을 1962년 복원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만 단층 팔작지붕이며, 이외에 신당, 강당, 재실 등의 건물이 있다.
매년 봄·가을(음력 3.16, 9.16)에 본향 유림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9월 1일('14), 여수시 문화유산위원회 회의서 심의·의결, 시 문화유산(기념물 제2호)으로 지정
사충사 유허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전남 여수시 여천동 68-2
시 대 조선시대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급하자 여수(웅천) 출신으로 이순신 장군을 도와 큰 공을 세운 4충신은 정철과 그의 아우 인, 종제 춘, 종질 대수이다. 정철은 당항포 해전에서 공을 세우고, 선조 28년(1595) 부산 싸움에서 선후장으로 활약하던 중 적탄에 맞아 순절하였고, 정인은 종형제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당항포와 진주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다.
정춘은 선조 21년(1588) 무과에 급제, 임진왜란 때 당항포와 한산도 해전에서 싸웠으며, 옥포 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순절하였고, 정대수는 선조 21년(1588)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조방장이 되어 뛰어난 전술을 수립함으로써 당항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또한 명량 해전에서 공을 세우고 선조 31년(1598) 노량 해전에서 순절하였다. 이들을 모시던 사당이 여천역 앞에 있었으나 웅천으로는 옮기기 위해 사충사 터를 허문 뒤 위패를 대인산에 묻고 이곳에 유허비를 세웠다.
여수시 관광정보 - 관광명소 - 관광DB검색 - 오충사
이 외에도 웅천지구 내 이순신 관련 유적지로는 "이충무공 어머님 사시던 곳"(자당기거지)이 있으며, 웅천동과 시전동의 경계로 망마산(142m)이 있는데, 이는 이순신 장군이 망을 보고 훈련을 시켰던 곳으로, 훈련하는 말을 바라볼 수 있어 붙여진 명칭으로 임진왜란 당시 선소를 수비하기 위해 기마병 조련을 위한 치마당과 산봉우리 중앙에 훈련대를 만들었으나 지금은 기단석만 남아있으며, 병사들이 훈련을 할 때에는 처음 홍의를 입고 몇바퀴 산정을 돌고 난 후, 청의로 갈아 입고 다시 한차례 돌고 백의로 갈아 입어 병사들이 많은 것 같이 보이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인근 시전동에 선소유적(사적 제392호)이 있으며, 참고로 웅천동과 신기동은 시전동과 더불어 '시전동'이라는 행정동을 같이하고 있다. (웅천동, 신기동은 법정동명임.) 즉, 시전동은 법정동이자 행정동명이다.